톨비밀레....에 엘시까지(???) 엘시 호감도를 잘못 설정한 듯한 기분이 드는데 쓰다보니 5렙이 된 것 같으니 아무래도 좋은 것(?)

엘시 조아해... 개인적인 주밀레 설정이 들어가 있어 일반적인 밀레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엘시 외의 조원은 임무 나갔다는 설정(글에 미처 표현하지 못함)

 

 

 

 

 

엘시는 거칠어진 호흡을 골랐다. 심호흡 몇 번에 들썩이던 어깨가 진정되어, 아이는 타고난 재능에 몸을 맡겼다. 내지르고, 몸을 뒤틀어 세 번 돌려 찬 뒤, 땅에 두 발이 닿자마자 공중으로 몸을 날린다. 그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 매끄러워야 한다고 했다. 다른 무기를 사용할 때보다 세 배는 긴 집중력을 요하는 무기인 만큼, 격투는 수련에 주의를 요했다. 아이는 나이 답지 않은 집중력으로 주어진 과제들을 해내었다. 그 과정들은 이미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길고 길었던 수련에도 끝은 찾아왔다. 마지막 회차를 끝낸 엘시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굴을 훔치며 돌아섰다. 그러다 깜짝 놀라 숨을 들이쉬었다. 한쪽 구석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훈련 사항을 조곤조곤 일러주고 다른 조원을 보러 갔던, 엘시가 소속된 벨테인 특별조의 조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다시 온 줄도 모르고 훈련에 매진했던 모양이다. 아이는 놀란 가슴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훈련이 끝나길 기다리시는 걸까? 그렇다면 보고를 해야지. 아이는 한 걸음 내딛고서야 그녀가 잠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훈련장 구석에 쌓아둔 상자에 등을 기댄 밀레시안은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떨구어진 고개며 한쪽으로 모아 앉은 다리, 무릎에서 떨어진 모양으로 나뒹구는 손 등이 무척 불편해 보이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실핏줄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얇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었다. 어떡하지, 고민하는 아이의 곁으로 철컥,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이는 또다시 펄쩍 뛰었다.


.”


갑자기 나타난 그 어른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진지한 얼굴로 입술 앞에 손가락을 세워들었다. 엘시는 덜덜 떨며 뒤로 물러났다.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르는 어른은 무섭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너클 낀 주먹을 꾹 쥐었다.


놀라게 했구나. 미안하다. 그래도 조용히 해주겠니? 깨우고 싶지 않구나.”


아이의 조장님처럼 상냥한 말씨였지만 쉽사리 경계를 풀 수가 없었다. 엘시의 파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장대한 어른의 모습을 훑었다. 반듯이 챙겨 입은 갑옷, 한참이나 고개를 들어야 보이기 시작하는 턱선. 그 위로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입매와 코, 노을빛에 환히 빛나는 곱슬머리 금발……. 엘시는 다음 순간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아이는 그 나이 특유의 예리함으로 그 푸른 눈동자에 감추어진 서늘함을 알아챘다. 이길 수 없는 건 무섭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엘시의 여린 주먹에서 빠르게 힘이 빠져나갔다.


그 어른이 발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조금 전 들었던 쇳소리가 거짓말인 것처럼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여야 저런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이렇게 조용할 수 있지? 아이는 그 어른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를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조금 전 들었던 쇳소리는 일부러 낸 걸까? 엘시는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그의 발, 무릎, 점차 위로 솟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떨구어졌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기 때문이다. 그 무릎 앞에는 아이의 조장이 잠든 채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잠들어 계셨니?”


여인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낮은 목소리가 하는 질문에 저항할 힘 같은 건 아직 엘시에게 없었다. 아이는 덜덜 떨며 겨우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 …… 몰라요……. …… 저는, …… 훈련을…….”

그래, 지켜보다 잠드셨구나. 혹시 언제쯤 환생 하셨는지 아니?”

, ? , 저는…… …….”

그래……. 훈련은 잘 받았니?”


엘시는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그제야 알았다. 그 무서운 어른은 그녀 앞에 무릎 꿇은 뒤로 한 번도 엘시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잠든 이의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잡아 넘겼다. 그 행위는 무척 조심스럽고도 거리낌이 없었다.


일단 쉬렴. 조장님은 내가 모셔가마. 수고했다.”


그는 말을 끝마치며 손을 뻗었다. 불안하게 꺾인 고개, 턱에 손이 닿는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제 어깨에 얹었다. 왜소한 어깨를 감싸 조심스레 안아서는 다른 팔로는 흰 치마 속 접힌 무릎 아래를 받쳤다. 그대로 들어 올리려던 참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그는 행동을 멈췄다. 이윽고 내내 감겨 있던 눈꺼풀 아래 녹색 눈동자가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아래 말라붙은 작은 입술이 열렸을 때, 엘시는 뱃속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

쉬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도 그 모습은 무척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저물어가는 노을 속에서 그 남자는 여인의 잠이 깨면 그녀가 사라질 거라 믿는 사람 같았다. 그는 고개를 한껏 숙였다. 그의 뺨이 여인의 이마에 닿았다.


저 사람은 놓아주지 않을 거야. 엘시는 깨달음과도 같은 그 한 문장에 치를 떨었다. 아이는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쉬이…….”


그 나직한 허밍에 여인은 조금씩, 조금씩 다시 눈을 감았다. 미간에 작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감기는 눈과 반대로 바닥으로 늘어져 있던 앙상한 손이 천천히 위로 솟았다. 잠에 취해 잠시 허공을 헤매던 그 손은 남자의 흉갑에 닿아 손톱을 세웠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조금 더 더듬어 위로 올라, 그 틈새를 꽉 움켜쥐었다. 엘시는 알아듣지 못할 그녀의 웅얼거림이 그 남자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엘시는 그의 입술 지척에 조장님의 귓바퀴가 자리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싫어지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 한 마디에 서서히 그녀의 얼굴에 평안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갑옷을 움켜진 손은 그대로였다. 남자는 조금 더 지체하더니 그녀가 도로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는 확신을 얻자 몸을 일으켰다. 참 오랜만에 그의 눈이 엘시를 찾았다. 통보는 조금 전 이미 했다. 그는 말없이 눈으로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 걸음이 곧게 조장님에게 배정된 숙소를 향하고 있었다. 엘시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이는 다시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몸을 뒤틀어 세 번 돌려 찬 뒤, 땅에 두 발이 닿자마자 공중으로 몸을 날린다. 바닥에 등부터 떨어진 뒤 곧바로 몸을 솟구쳐 다음 동작을 준비한다. 아이는 이를 악다물고 있었다. 무척 화가 나 있었다. 해가 완전히 져버린 하늘이 완연한 검은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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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연성] 무제

마비노기 2015. 12. 30. 04:18

제목 붙이기 난감함... 하ㅏ 클로드 기여어 근데 캐붕이 있을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러운 것... 오너님께 검토해달라 하기엔 애매한 종류라 멋대로 올립니다 자캐 사난사+ 길드원 클로드 그들의 방식 생각하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그거 1인 미션이잖아요? 클로드랑 데이트 하려고 에린의 인과를 비틀음;(존ㄴ나

 

 

 

 

 

그림자 세계의 하루는 틀에 박혀 있었다. 하루에도 죽어나는 병사가 수십이니 되살아나는 좀비도 수십이었다. 멀리서 쏘는 화살이나 마법 따위에도 아랑곳 않고 느릿느릿 접근하는 좀비들은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으나 마법이나 활에 의존하는 밀레시안들에게는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만치 귀찮은 적이었다. 때문에 그것들은 주로 검에 베여 도로 땅에 눕곤 했다.

 

난사는 검에 들러붙은 썩은 살점을 털어냈다. 얼마 전에 마련한 검을 길들일 겸 오랜만에 페이단의 의뢰를 받아왔는데, 생각보다 검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빨랐다. 검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섬세하여 같은 대장장이가 만들어도 그 무게며 중심이나 성질이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이전에 쓰던 것보다 묵직하여 어떻게 써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온순한 성질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휘두르는 대로 곧잘 따라붙어 살덩이를 절단 내기가 쉬웠다. 난사는 만족스럽게 검을 몇 번 더 휘두르고 뒤로 돌았다.

 

내 볼일을 끝난 듯하오. 고맙소, 클로드.”

 

자그마한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난사의 가슴께에 겨우 닿는 작은 소년이지만 그녀는 그 자그마한 어깨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제 검을 시험해보는 일만 아니었다면 이런 임무는 진즉 끝마치고 보상을 받아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난사는 굳이 한 번 더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조금이라도 더 자신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함께 와주어 고맙소. 걱정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자네에게 헛걸음을 하게 한 게 아닌가 싶군.”

아니에요.”

다행이오. 뒤에 서 있기만 하는 게 지루하진 않았소?”

. ……괜찮아요.”

 

이전 같았으면 네, 하고 짧게 끝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난사는 그 모르게 슬쩍 웃었다. 차차 말이 늘겠지. 나중에는 그가 먼저 뭔가를 부탁하거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꺼내며 웃게 될 날도 오겠지. 클로드와 주고받는 말이 한두 마디씩 늘 때마다 난사는 그런 작은 기대를 품곤 했다. 오늘처럼 기대가 보답 받은 날에는 무척 기분이 들떴다. 그리고 사난사는 기분이 들뜨면 꼭 한 가지씩 놓치고야 마는 허술한 성격이었다.

 

…….”

? 무슨 일이오, 클로드?”

아직 결계가 풀리지 않았어요.”

 

난사는 아차 싶어 광장 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말대로 광장 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아무 것도 없었다. 페이단이 준 정보에 따르면 광장에 좀비들이 한 부대는 모여 있다 했다. 전투 최전선에 적을 둔 난사나 클로드가 느끼지 못할 정도라면 결계 외의 수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난사는 헛기침을 하며 도로 돌아섰다. 창피스러워 그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렇군. 어딘가 한 군데 놓친 게 아니오?”

.”

 

클로드는 그렇게 말하더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난사는 그가 지나온 길을 흘끔거리는 모양을 보고 한 박자 늦게 눈치 챘다. 아무래도 어딜 놓쳤는지 아는 모양이었다.

 

짐작 가는 곳이 있소?”

.”

그래……. 이 잡듯 이 넓은 곳을 뒤질 필요는 없어 다행이군. 앞장서주겠소?”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뒤로 뛰었다. 뜀박질에 망설임이 없어 난사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뒤를 따랐다. 오래 달리지 않아 두 사람은 어느 골목 앞에 멈춰 섰다. 난사는 조금 전 이 대로에 좀비가 여덟이나 포진해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병사의 시체 두 구가 여즉 나뒹구는 너머로 인간 아닌 것의 기척이 느껴졌다. 클로드가 숨을 죽여 속살거렸다.

 

여기일 거예요……. 아마.”

그렇군. 조금 전엔 제대로 살피지 않았지.”

 

난사는 한숨을 삼켰다. 그림자 세계에 발을 들인 뒤, 그에게 이번 임무는 제 검을 길들일 겸 제 수준을 가늠하고 싶으니 뒤에서 보기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이후 전투에 집중하는 저를 차마 방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기야 검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그가 말하려 해봤자 놓쳤을 것이다. 사난사는 한 번 무언가에 집중하면 사위를 잘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혼을 빼곤 했다. 전투나 무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난사는 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창피스럽기도 하여 일부러 그를 보지 않고 검을 뽑아들었다.

 

여기가 마지막이겠지?”

.”

그럼 클로드 먼저 광장으로 가주겠소? 지체한만큼 서두르지. 페이단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하군. 자네도 뒤에서 보기만 하느라 지루했을 게 아닌가.”

 

얼른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당장에 골목으로 뛰쳐들 준비를 하고 있던 난사는 살짝 당황했다. 그녀가 알기로 클로드는 이런 상황에서 대답이나 행동을 망설이는 이가 아니었다. 뭔가 잘못됐을까.

 

클로드?”

……죄송해요.”

 

소년은 작은 사죄를 남기고 광장을 향해 뛰어갔다. 난사는 잠시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죄송하다니, 무엇이? 난사가 클로드에게 사죄할 일은 있어도 그 반대일 일은 없었다. 다행히 당황은 짧았고 깨달음이 찾아왔다. 뭔가 오해를 한 게 틀림없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식은땀이 솟았다. 광장과 골목, 잠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몸이 결국 골목으로 뛰쳐들었다. 휘돌러지는 검에 조급함이 실려 있었다.

 

 

 

난사의 걸음으로는 광장까지 한달음이었다. 마음이 급한 것도 있어 쓸데없는 힘까지 들여 뛰었건만, 난사가 도착했을 때 클로드는 이미 마지막 좀비를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흰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다가 훅 꺼졌다. 그는 검을 집어넣다가 난사를 발견하고 크게 움찔했다. 그녀를 똑바로 보지 못하더니 결국 두 눈이 땅을 향한다. 난사는 숨을 가다듬으며 그에게 다가섰다. 무엇을 오해한 것이며 또 그것을 어찌 풀어야 하나.

 

…… 빠르군. 역시 대단하오.”

아니에요.”

아니, 정말로. 고맙소, 클로드. 덕분에 편히 끝냈소. 지체한만큼 그대가 만회해주었으니 페이단에게도 면이 설게요.”

……죄송해요.”

 

난사는 이를 악물었다. 저 섬세한 소년이 느끼는 죄책감은 그녀의 실수로 인한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뭘 실수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난사는 그의 죄책감 자체를 정면에서 부정해버리면 상황이 악화될 뿐이라는 것을 숱한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었다.

 

일도 다 끝났는데 그대가 죄송할 게 무어요? 괜찮소. 그대가 뭘 잘못했더라도 반은 내 책임이오. 괜찮아.”

아니…….”

 

그의 어깨가 더 작아보였다. 난사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그에게 다가섰다. 저보다 강한 이가 이리 여린 소년이라는 것은 몇 번씩 실감해도 어색한 일이었다. 때문에 난사는 아직 클로드의 어깨를 힘있게 잡아주는 것 외에 다른 적절한 대처법을 알지 못했다.

 

괜찮대도.”

…….”

 

작은 입이 열릴 듯 말 듯 오물거렸다. 난사는 크게 놀랐다. 으레 괜찮다 넘기면 못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던 이였다. 오래 살아 얻은 것 중 으뜸은 인내심이다. 난사는 입을 꾹 다물고 숫자를 셌다. 하나, , , …….

 

제가 말을 안 해서…… 늦어진 게…….”

 

지체한만큼 서두르지. 이것이었군. 난사는 한숨을 삼켰다. 역시 그녀가 말을 잘못한 게 문제였다. 다음부터는 좀 더 말을 골라서 해야겠다고, 아니 애초에 당황한 채로 그와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난사는 허리를 숙였다. 여전히 그의 어깨를 잡은 채였다. 난사가 눈높이를 낮춰 시선을 맞추자 클로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빠르게 깜빡인다.

 

아니오. 애초에 늦지도 않았소. 괜히 내 마음이 급해 그대에게 부담을 준 게로군. 신경 쓰지 마시오, 클로드. 시간도 남았소.”

……다행이네요.”

 

불안하게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에 안정감이 되돌아왔다. 해결됐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난사는 고개를 흔들며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몸을 바로 세웠다. 안심이 되자 기뻐할 일이 있다는 것도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쿡쿡 웃었다. 클로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난사는 그의 머리를 헝클지 않기 위해 팔짱을 꼈다. 기특하다 말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클로드의 손에 쓰러진 좀비들은 이미 재로 날려 흔적뿐이었다.

 

편히 갔겠지…….”

.”

그대 덕이오.”

 

아니라는 듯이 다시 고개를 떨구는 클로드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난사는 팔짱 낀 팔에 힘을 주었다. 당황 직후 빠르게 안심한 탓에 다시 기분이 조금씩 들뜨고 있었다. 난사는 조금 전의 결심을 깜빡 잊었다.

 

그 작은 몸으로 이런 일들을 해내는 걸 볼 때마다 감탄스러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게요?”

…….”

 

대답이 없었다. 난사는 그가 칭찬을 들을 때마다 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부끄러움을 감추던 모습을 기억했다. 과한 칭찬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귀엽기도 하지.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클로드?”

……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 걸었다. 난사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클로드는 그 잠깐 사이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아주 빠른 걸음은 아니었지만 난사가 돌아가자 말하기 전에 그가 먼저 움직인 일은 없었다. 더구나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난사는 서둘러 그를 쫓았다.

 

클로드! 같이 가시게!”

 

대답은 없다. 난사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위기감에 당황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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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시안+펜아르 음... 전 좋아하는데 음... 네... 누구 나랑 같이 이거 먹어줬으면 좋겠다

 

 

 

 

 

눈은 소리를 먹는다. 때문에 발레스 근처는 얼음을 깨부수는 자이언트 전사들만 아니면 무척 고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눈이 채 다 먹어치우지도 못할 쾌활함을 흩뿌리는 자이언트들도 이미 오랫동안 발걸음하지 않은 덕에, 나이 먹은 눈은 어린 눈들을 머리에 이고 아주 긴 시간 잠들 수 있었다. 그대로 소리를 먹으며, 쌓인 눈은 얼음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산산이 부서져 조각조각 빛으로 날았다. 눈밭은 헤집어지고, 상처 입은 끝에 짓밟히길 반복했다. 피가 뿌려졌다. 더운 김이 피어올라 늙은 눈은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얼음의 꿈이 녹았다.

 

펜아르는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그의 까만 눈에 깃든 희열이 번들거렸다. 한낮의 설원은 태양빛뿐만 아니라 눈밭에 반사되는 것까지 합해 무척 밝다. 그 위에 두 발로 선 검은 인랑人狼은 무척 도드라졌다. 사난사는 검을 들어 그를 겨눴다. 몇 합 만에 찾아온 짧은 휴식이었다. 둘의 어깨가 맞춘 듯 같은 박자로 오르내렸다.

 

……그대는 참 나쁜 적이오.”

 

말과는 달리 사난사는 무척 상쾌한 표정이었다. 인랑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맹수는 그렇게 웃는다. 그는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입에 담는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이면 적이지, 나쁜 적은 뭐냐.”

좋은 상대는 나쁜 적이지. 베어버리기에 아깝지 않겠소.”

 

호탕한 웃음소리가 얼어붙은 강을 흔들었다. 그는 한참이나 웃더니 박수를 쳤다. 저 멀리서 그 모습을 서커스의 광대 둘이라도 감상하는 듯한 브릴루엔은 이미 두 호인의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사난사. 너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 두 번째로 가는 행운이다.”

고마운 말이로군. 나도 그대 같은 무인을 만나 기쁘오.”

 

도무지 그를 향해 살기를 뻗을 수가 없었다. 그와 자웅을 겨룰 마지막 기회임을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잡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가 적이 아니었더라면 좋은 대련 상대가 되었을 텐데. 하다못해 어느 지하 던전에서 만난 한 마리 늑대였더라면 좋은 벗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의를 알고 우직했으며, 은혜를 알았다. 난사는 그 중 마지막을 가장 높은 가치로 쳤으나 정작 그 둘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를 만난이래, 난사는 머릿속 한켠으로 늘 그 사실을 안타까이 여겼다.

 

펜아르!”

 

그 한 가지가 미치도록 아쉬웠다. 난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검을 고쳐 잡았다. 마지막이어야 할 대련이다. 검 끝의 망설임은 일부러라도 죽여 없애야 한다. 비단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당신 인생의 제일 가는 행운을 죽이러 가오.”

 

느슨해졌던 공기가 점차, 빠르게 팽팽해졌다. 펜아르는 자세를 낮추며 몸집을 부풀렸다. 아래로 늘어뜨렸던 열 개의 손톱이 다시금 그녀를 향한다. 난사는 숨을 들이쉬었다. 머금고, 참았다. 제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아쉽기 그지없는 마음은 조금 전의 선언과 함께 내뱉어서 버렸다. 난사는 펜아르 또한 그랬기를 바랬다. 마지막일 결투라면 둘 중 하나의 목숨도 이 곳에서 끝나야 했다. 그도, 그녀도 무엇 하나 단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휘느니 부러지고 말 이들끼리의 결착이란 그런 법이었다.

 

그 이상 오가는 말은 없었다. 잡아당기는 이가 둘이라 빠르게 팽팽해진 공기는 임계점에 도달하여 터지듯 끊어졌다. 내뻗는 발, 휘둘러진 검 끝에 다시금 눈밭이 헤쳐진다. 늙은 눈의 얼음 꿈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눈이 먹을 것이라고는 브릴루엔이 여보란 듯 늘어지게 하품하는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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