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꿈이다. 첼은 느리게 두 눈을 깜빡였다. 눈꺼풀이 안구를 덮는 감각이 생경했다. 손안에 쥔 스태프의 촉감이 비현실적이었다. 잠을 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기억도 희미했지만, 아마 꿈을 꾼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머릿속에 안개라도 낀 것처럼 몽롱한……. 이따금 천천히 목숨을 잃을 때 서서히 멀어지던 의식과도 같은 그런. 첼은 저도 모르게 두 팔에 무게를 실었다. 오래 산 나무를 깎아 만든 스태프는 그에 걸맞게 오랜 시간동안 손을 타 맨질맨질했다. 멍하니 힘을 가하던 첼은, 그 때문에 손안에서 스태프를 미끄러뜨렸다. 세상이 뒤집혔다. 첼은 생각했다. 이건 꿈이다.
서서히 의식이 또렷해졌다. 첼은 등의 아픔을, 미묘한 눈부심을 자각하며 손목의 고통도 서서히 자각했다. 첼의 장갑은 손목도 채 덮지 않는 짧은 것인데다 한 짝뿐이었다. 맨 살을 내리누르는 톨비쉬의 큰 손에는 가죽과 금속판을 엮어 만든 건틀렛이 덧씌워져 있었다. 첼은 그가 온 힘을 다해 저를 내리누르고 있는 걸 알았다. 크게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어깨와 붉은 눈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제 배 위에 올라탄 그의 무게가 현실감을 갖추자 숨쉬기가 무척 버거워졌다.
“……무거워.”
오랜 지체 끝에 톨비쉬는 서서히 첼의 두 손목을 놓았다. 그의 배 위에서 몸을 내릴 때에는 짐짝을 내던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털퍽. 첼은 머리 양 옆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제 두 팔 너머로 그 소리를 들었다. 뒤이은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그는 눈을 감았다. 아, 망했군. 그는 밀려드는 낭패감에 가벼운 헛소리를 덧씌워 감췄다.
“당신도 우는구나?”
“그야, 목을 졸렸으니까요. 생리적인 현상……, 아니. 저도 눈물이라는 게 있긴 합니다만, 첼 씨. 설마 그게 궁금해서 절 죽이려 드신 건 아닐 텐데요?”
물론 아니지. 어쩌다 한 번쯤 벌어질 법한 사고였다. 어쩌면 실수, 혹은 자연재해. 제 안에 깃든 힘을 생각하면 자연재해라 생각하는 편이 톨비쉬로서도 납득하기에 편할 것이다. 첼은 하필 이럴 때 손안에 없는 제 정령을 향해 진심도 아닌 짜증을 던졌다. 날아간 방향은 허공이다. 첼은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짧은 시간이나마 붙들렸던 손목이 무척 쓰라렸다. 미안, 하고 운을 떼며 모자를 찾아 먼지를 털었다. 챙이 드리우는 그림자 아래 눈을 감추며 제 혼돈도 감췄다. 어쩌다 그의 목을 조르게 되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보나마나 과거의 그림자에 먹힌 탓이겠지. 누구의 그림자인지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