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이었다. 밤짐승의 눈이 아니고서는 횃불 없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어두운 숲 속이다. 아이르리스는 무리의 가장 앞에 서서 횃불을 높이 들어올렸다. 발밑, 그리고 등 뒤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녀의 등 뒤에는 견습이라고도 불리지 못하는 기사단의 일원들이 서넛 딸려 있었다. 아이르리스의 이번 임무는 임시조의 조장을 맡아 그들을 책임지는 동시에 전투가 끝난 정식 조원들의 뒷정리를 하는 것. 이 정도는 밀레시안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벨테인 조의 일원인 제 능력에 당연한 부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강박적으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옷은 이미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곧 지시받은 지점에 도달한다. 스며들기 시작하는 안도감과 머리 바로 위까지 들어 올린 횃불 때문에 아이르리스는 뒤의 조원보다 한 박자 늦게 연기자락을 발견했다. 지시받은 지점이 틀림없는 그 위치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신호라던가 밤공기를 견디기 위한 캠프파이어 크기는 절대 아니었다. 삽시간에 조원들 사이에 불안이 스며들었다. 아이르리스는 뒤로 돌아 크게 호통쳤다.
“조용히! 이만한 일로 허둥대서 어쩔 거지? 대형 유지하고, 빨리 움직인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도 침착하지 못한 탓에 대열은 흐트러졌다. 허둥지둥 달리다시피 움직여 지점에 도착한다. 기르가쉬만한 사도가 난리를 친 곳이라 이제 막 생겨난 것과 다름없는 공터 주변은 엉망이었다. 그 끄트머리 어딘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을 둘러싼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르리스는 그녀보다 한 발짝씩은 꼭 늦는 조원들에게 들키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 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인 것이다. 아이르리스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번에 지원할 전투조는 괴짜라고 소문난 카즈윈 조장님의 헤루인 조…….
그리고 아이르리스는 결국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
피네는 초조한 마음을 다스리려 심호흡을 하며 걸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야 되지만 당장 맞닥뜨릴 미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녀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며 할 말을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원만하게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가까워지자 그녀의 당면한 과제가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게 보였다. 턱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으니 아마 그 입술은 너덜너덜할 것이다. 피네는 안쓰러운 마음에 이름부터 불렀다.
“아벨린.”
아벨린은 대답하기에 앞서 가슴을 부풀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오히려 아무 말도 못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녀는 피딱지가 앉은 입술을 바르르 떨며 들이쉰 숨을 아주 길게 내쉬었다. 랜스의 손잡이를 움켜쥔 손 또한 떨고 있었다. 피네는 그녀 옆의 알터에게 눈짓했다. 알터는 화들짝 놀랐다가 아벨린을 한 번 보고, 다시 피네를 본 다음에 바닥을 보았다. 그러나 오래 지체하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벨테인 조 견습 기사들을 향해 멀어져갔다.
그것으로 아벨린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아벨린은 정자세로 들고 있던 랜스를 세우고 입을 틀어막았다. 한 번 걸러졌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그 남자는 생각이 없는 거야? 일을 도대체!”
“아벨린, 일단 진정해봐. 너무 흥분했어. 다들 보고 있어.”
피네는 일부러 한 번 제 등 뒤를 향해 눈짓했다. 아벨린은 그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했으므로 진정까지는 아니어도 분을 삭이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피네는 그녀가 숨을 고르는 박자에 맞춰 다가가 손을 잡았다. 아벨린은 손을 빼고 싶어했지만 피네가 놓아주지 않았다. 몇 번의 심호흡 후, 아벨린은 훨씬 차분해진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인 거야, 그 남자는? 너는 알지.”
“……응. 그리고 아벨린, 너도 알잖아. 카즈윈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아벨린은 다시 소리를 지르려다가 눈을 감아버렸다. 한 번 입술을 빨고, 숨을 크게 내쉬며 피네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꾹 준다. 그러고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
“내 말은, 아직 기사단 전체에 공표하지도 않은 시점에 독단적으로 일을 저지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는 거야. 지원이 올 걸 알았을 거 아냐? 아직 어린애들이야. 그 남자가 어떻게 보였겠어?”
피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벨린의 지적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반박하고 싶은 것과 별개로 인정해야 할 부분은 분명 있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그녀와 언성 높여가며 이야기를 길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들을 주시하는 눈동자가 수 쌍이었다. 슈안, 알터, 그리고 벨테인 조의 다섯 명. 가장 오른쪽 끝자리가 비어있었다. 사건을 목격한 아이는 밀레시안이 잠시 데려갔다고 보고 받았던 기억이 났다.
“이제…… 설명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곧 공표될 일이었잖아.”
“……이렇게 알려질 일이 절대 아니었어. 다들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 ……나도 아직까지 이렇게…….”
피네는 결국 아벨린의 손을 놓쳤다. 아벨린은 풀려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피네는 조금 움직여 사람들로부터 아벨린을 가렸다. 손가락 틈새로 신음과 함께 말이 샜다.
“시신을…… 태운다니…….”
에린의 장례 풍습은 기본적으로 매장이다. 어느 마을이나 묘지가 있었고 성당이나 교회가 관리를 맡는 형식이었다. 산 자는 죽은 자의 묘비를 쓸며 위안 받는다. 큰 돌을 깎아 만들기 마련인 비석엔 Rest In Peace라고 적혔다. 편히 쉬소서. 이제 아무 걱정 없이 눈감고 편히 쉬소서.
그러나 이제 알반 기사단의 정식 기사 이상, 어쩌면 기사를 목표로 삼았거나 한 때 기사였던 자들 중 그 누구도 땅 속에서 편히 쉴 수 없을 것이다. 피네는 선지자들의 목표를 되새겼다. 살아있는 사람, 시체, 신성력을 가진 사람. 그들이 유일하게 실패했던 마지막 목표는 신성력이 있는 시신이었다. 알반 기사단의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그 누구도 초대 단장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신성력일 테지만 만에 하나일지 모를 가능성 때문에 지도부는 앞으로 발생하는 사망자는 화장하기로 결론지었다. 다만 어느 등급부터 그런 식으로 처리해야 할지는 아직 논쟁 중이었으므로 조장급 이하에게는 결사단의 일원이었던 알터를 제외하고는 기밀사항이었다. 이 사항은 아직까지도 논쟁 중이었다. 그 와중에 그는, 카즈윈은 조원급 일원의 화장을 치렀다.
땅속에 뉘여야 할 유해를 태우는 행위는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헤루인 조의 뒤처리를 도우러 나갔던 아이르리스가 목격한 연기자락은 시신을 태우던 불이었다. 쌓아올린 장작, 그 곁에서 불을 쬐던 사람은 둘 뿐이었다. 도착했음을 보고하고 할 일을 묻자 불 옆에 앉아있던 조원이 잠긴 목소리로 장례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정적은 길지 않았다. 어린 견습 기사들은 그제야 보통 크기보다 훨씬 큰 캠프파이어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고…… 피네는 그 후 벌어졌던 소란에 대해서는 회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녀가 조원들을 임무지에 대기시켜두고 아발론 게이트에 올 이유는 소집 명령 외엔 달리 없었다. 피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즈윈은…… 이미 와 있다고 들었는데 만나는 봤어?”
“침착하게 마주할 자신 없어. 톨비쉬까지 다 모이기 전에는 보지 않을 거야.”
“……그래. ……아벨린, 그럼 그 때 보자.”
“넌 그 남자한테 너무 물러.”
모를 것 같지는 않지만. 아벨린은 잠시 쉬고 덧붙였다. 피네는 부정하지 않고 쓰게 웃었다.
'마비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톨비밀레]백일몽 (0) | 2015.12.24 |
|---|---|
| 편히 눕지 못할 자들-下- (0) | 2015.12.05 |
| 모든 것은 연민에서 시작됐다 (0) | 2015.11.27 |
| 감히 동정컨대 (0) | 2015.11.27 |
| 사난사 무림 시절 연성 (0) | 2015.11.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