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라크가 퀘스트로 날려주긴 하지만 이런 게 보고 싶어서 써봅니다 설정 날조 주의

 

 

 

  네 이름을 잊지 않겠다. 그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오해를 가져가며 그 한 마디를 주고 갔다. 내 잘못이 없다 확신하면서도 그 때 그 얼굴,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 더는 서 있을 수 없을만큼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는 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는 내 이름을 발음하며 증오를 담았고, 나는 그 후로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다른 밀레시안들은 수면 없이도 기능할 수 있다던데 이 몸뚱어리는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은 것처럼 후들거렸다. ……정확히는 내 영혼이었다.

 

"가멧 씨?"
 

  창백한 드루이드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나는 퍼뜩 놀라 움켜쥔 스태프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조금 피곤해서..."
"피로……라고요? 밀레시안들은 어떻게 피로를 해소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똑똑한 사람이니 밀레시안의 생리 상 피로라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알 것이다. 설명을 바랐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고개만 가로저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보다 부탁하실 일이라는 게……?"

 

  마음을 가다듬고 시선을 들자 그는 착잡한 얼굴로, 또다시 미안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는 오래도록 말을 고르고 다듬은 후에야 꺼내놓곤 했다. 그가 처한 상황을 알면서도 그 정성스러운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말을 꺼내기 전 잠시 지체하는 이 시간동안 이미 그의 부탁을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엔 그에게 감사할 일도 있었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정말 나를 도우러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루에리의 일입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가멧 씨."

 

  직전까지도 그에 대한 생각을 하던 차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얼굴을 굳히는 것을 보더니 그는, 타르라크는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거절하리라 생각했는지 못내 미안해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의 행방을 꼭 찾고 싶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압니다.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감히 부탁드립니다. 저를 봐서라도 제발……. 그도 어찌 보면 여신의 피해자가 아닙니까."

 

  하얀 입김이 가장 큰 피해자의 얼굴을 가렸다. 내 눈에는 그가 스스로를 숨겨 루에리를 가장 큰 피해자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러나 루에리의 가해자는 그의 아버지였고 나였으며, 마지막은 그 스스로였다. 타르라크가 스스로의 고통을 깎아가면서까지 그를 포장할 필요는 없었다. 설사 루에리가 가해자였다 하더라도 그의, 타르라크의 부탁이라면 나는 움직였을 것이므로. 내게는 기실 가해자나 다름없었다.

 

"……알겠어요. 내가 할 일이 뭐죠?"

 

  그는 퍼뜩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감사인사를 하며 안도한 그의 창백한 얼굴에 잠시 핏기가 돌아왔던 것으로 셈을 끝냈다. 설원에 가진 것 하나 없이 맨 몸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무슨 대가를 바란단 말인가. 그가 멀쩡히 살아 숨쉬는 게 감사한 일이었다.

 

  타르라크가 건네어 준 갑옷 조각을 받아 품에 잘 갈무리하고, 나는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 쓰고 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비록 드래곤에 의해 우호적인 형태로 거두어졌다고는 해도 루에리는 당시 중상이었다. 다난의 몸으로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말에 오르기 전, 나는 안장 뒷편에 매어 둔 짐에서 푸른 꾸러미를 꺼냈다. 늘 건네받던 것인데도 안쓰러운 그는 매 번 미안해했다.

 

"도움 될 만한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드루이드일 뿐인데……."

"매번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늘 말하지만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가 스스로를 낮출 때마다 울컥 억울함이 치솟곤 했다. 이것마저 없으면 큰일이 난다면서도 한 번을 기껍게 받으려 하지 않았다. 쓰게 웃는 그의 손에 또 마나허브 꾸러미를 쥐여주고 그 손을 힘주어 잡았다. 설원에 뿌리 내린 손이 먹을 것이라고는 냉기 밖에 없어 무척 차가웠다. 나는 늘 그에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미안하다 하지 말고 고맙다고 해주겠어요?"

 

  내 말이 예상 밖이었는지, 네모난 안경 너머 두 눈이 동그랗게 몸을 부풀리더니 나를 본다. 새하얀 설원, 검은 돌더미 무채색의 세상에 그만이 색을 가졌다. 그 빛이 바래고 있는 것이, 더 바랠 것이 지금으로썬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도…… 나도 당신 친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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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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