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님의 밀레시안 첼을 빌렸습니다. 첼mk2임. 벚꽃비화술 수련포+야파완 값입니다...!(존나
첼이 유독 톨비쉬에게 까탈스럽다는 것은 기사단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모두라는 건 그 당사자 둘을 포함한 인원이다. 처음에야 톨비쉬도 관계를 개선해보려 노력했던 것도 같은데, 관계라는 것이 한 쪽의 일방적인 노력은 되레 역효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니 어느 순간부터는 톨비쉬의 노력도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첼과 비슷한 방향이었다. 둘도, 그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 톨비쉬가 황당한 광경을 목격한 것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히잉, 스칼레타아."
아발론 게이트가 아닌 던바튼 어딘가의 광장이었다. 유독 밀레시안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들끼리 알아들을 얘기를 나누는 곳. 첼이 아발론에서 벨테인 조를 봐주는 게 아니면 으레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던바튼을 지나는 김에 들러보았을 뿐이다. 그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첼은 어느 여인의 품에 안겨 울먹이고 있었다.
가장 위대한 밀레시안, 반신, 골드 드래곤의 감응자. 반사적으로 떠오른 그 숱한 별명들을 한 쪽으로 치우고, 톨비쉬는 잠시 그를 지켜보았다. 마침 눈에 띄는 갑옷은 뒤집어 쓴 로브가 가리고 있었으므로. 그는 시력이 좋은 편이었다. 첼은 두 눈에 그렁그렁하게 눈물까지 채워올리며 우는 척을 했다. 그래, 우는 척이었다. 황당하게도.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갈색 머리를 다섯 갈래로 땋은 여인은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무척 밀레시안다운 얼굴이라고, 톨비쉬는 은연 중에 생각했다. 첼의 자료 중에 저런 외양에 스칼레타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있기는 했다. 여동생이라 했던가. 밀레시안에게 가족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첼이 저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한 정보였다. 그는 문득 자신이 첼을 감시하듯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필연처럼 첼이 그를 발견했다. 어린애 같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는 데에는 한 순간이면 충분했다.
고민은 짧았다. 톨비쉬는 그대로 몸을 돌려 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러고는 곧 잊어버렸다. 한동안 아발론 게이트에 돌아갈 일은 없었으므로, 첼을 다시 보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대비였다.
아프다 싶을 정도로 땅을 때리는 빗줄기 속에, 첼은 오도카니 서 있었다. 가뜩이나 작은 몸뚱어리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고민은 짧았다. 싫은 소리 좀 듣더라도 내버려 둘 수야 없는 노릇이다. 톨비쉬는 그에게 다가가며 목소리를 틔웠다.
"첼 씨!"
빗줄기가 무척 거셌다. 톨비쉬는 미동조차 없는 뒷모습에 대고 몇 번쯤 그의 이름을 불렀다. 첼 씨, 뭐하십니까? 첼 씨! 좀 더 다가가자 어둑어둑한 사위와 그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에 들린 빛나는 둔기. 톨비쉬는 뭔가 심상찮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확신했다. 첼은 더 견딜 수 없을 때 으레 제 정령을 꺼내들곤 했다.
"아무리 밀레시안이라도, 이런 날씨에 굳이 비를 맞으며 서 계실 이유는 없지 않나요?"
부러 평이한 어조로 말을 걸었으나 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톨비쉬를 향해 조금 고개를 튼 것도 같았지만 빗줄기가 보여주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고민은 짧았다. 톨비쉬는 첼의 팔에 손을 가져다댔다. 가볍게 잡아 흔들 생각이었다.
머리 왼편으로 정령의 빛이 날아들었다. 전장에 적을 둔 몸이 아니었다면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손대지 마...!"
잠깐 닿았던 손이, 팔이 다시 빗속으로 내던져졌다. 톨비쉬는 순식간에 거칠어진 호흡을 숨기며 첼을 보았다. 당황스러운 것보다도 그의 얼굴이 이제 저를 향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곧 당황마저 잊었다.
빗줄기가 거세었다. 그러나 젖은 눈동자까지 가리지는 못하는 법이다.
"...꺼져."
톨비쉬는 잠시 지체한 뒤에 그의 축객령에 따랐다. 천천히 몸을 돌려 그에게서 멀어지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무엇을 깨달았나. 톨비쉬는 명상하던 버릇으로 제 충격의 원인을 찾아 침잠했다. 걸으면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애 같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는 데에는 한 순간이면 충분했었다.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었던 일이 같은 충격으로, 몸집을 부풀려 다시 한 번 그를 때렸다. 톨비쉬는 걸음을 멈췄다. 뒤돌아 보려고 했으나 누군가 붙들기라도 한 것마냥 고개도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그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확신과 동시에 보아야 한다는 확신이 동시에 들었다. 그 혼란에 몸이 굳은 것이다. 거기까지 제 상황을 정리한 기사는 새로 몸을 때리는 깨달음에 숨을 멈췄다.
둘 중 어느 것이 제 욕심인지, 선뜻 확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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